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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의 살인
김형선 2010-07-11 910
 


시각의 살인




“어떤 여자를 죽였어.”


“언제?” 


“어제 오후…….”


누군가에게 살인 고백을 듣는 것은 상상했던 것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마치 어제 있었던 EPL 17차전 경기 결과를 듣는 것 같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볼튼을 4:0으로 대파했다는…….


친구가 그 여자를 만난 것은 한 달 전이었다. 클럽이나, 채팅을 통하였다면 오히려 사건을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적인 타락이었는지 둘이 처음 만난 곳은 시립 도서관이었다. 친구가 죽인 여자는 폴 오스터의 ‘우연의 음악’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죽임을 당할 만큼 나쁜 소설은 아니다. 어쨌든.


“믿기지가 않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어.”


커피를 마시는 나의 손끝이 희미하게 떨렸다. 사람을 죽일만한 사람이 이마에 뭘 써 붙이고 다닌다는 말은 아니지만 내가 아는 한 이 친구는 결코 누군가를 죽일만한 인물이 아니다. 살인까지 한 사람을 변호하는 것은 웃기지만 굳이 따지자면 전쟁터에 나가서도 방아쇠를 당길지 의심될만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결코 도서관에서 만난 이름도 모르는 여자를 죽일 위인으론 도저히 생각되어 지지 않았다.


“종합해보자.” 


나조차 믿기지 않는 침착한 어조로 내가 말한다.


“너는 한 달 전에 어떤 여자를 만난 거지. 그리고 어제 그 여자를 죽인 거고?”

    

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러니까 너는 그 여자를 ‘확실히’ 죽인거지?”


그가 역시 아무 대답도 안했으므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졌고 나는 아리송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날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사람을 죽인 친구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나는 반갑게 그를 맞았다.


“널 만나고 계속 생각해 봤는데 뭔가 이상해.”


“이상해? 뭐가.” 


종이컵에 입을 대고 조용히 물었다.


“그 여자를 도서관에서 보고 난 다음 난 격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혔어.”


“…….”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어. 이름을 알고 나이를 알고 직업을 알고 집의 위치를 알아내고 전화번호를 알고 혈액형을 알고 신발 사이즈를 알고 좋아하는 색과 음식과 음악과 하여간 모든 것을, 그녀의 모든 것을 반드시 뼈 속 깊이까지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했어. 암호를 알아내지 못하면 몸이 찢겨 죽는 암호 해독 자처럼…….그래서 그녀의 뒤를 쫒았지.”


“어디 살았는데?”


“기억이 안나.”


“그래?” 


“정말 기억이 안나. 그녀의 뒤를 쫒은 건 기억나는데 집이 어딘지는 기억이 안나. 다시 일주일이 지난 뒤에 그녀를 길거리에서 마주쳤는데 내가 왜 그 곳에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나. 그리고 무작정 뒤따라가서 전화번호를 물었는데 전화번호가 기억이 안나. 영화를 봤는데 무슨 영화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그리고


“죽였는데 왜 죽였는지 기억나지 않고.”


“내가 미친 거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달리 뭐라고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물어 볼 수도 없는 일이다. 한숨을 쉬며 난 결국 최선의 생각을 말했다. ‘내 생각에는…….’


“먼저 그녀의 생사를 ‘확실히’ 알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침착하게 알아보라고 그리고 만약 그녀가 죽은 것이 확실하다면 경찰에 자수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지금 순간 너의 힘만으론 한계가 있는 거야. 우선 이상한 점도 너무 많고 말이지. 그리고 만일 그녀가 살아있다면, 친구, 자네는 무엇보다 정신과 의사를 만나는 편이 좋을 것 같네.”


내가 생각해도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그가 누구를 죽였든 말든 난 슬슬 진절머리가 날려고 했다. 더 이상 깊게 개입하고

싶지 않다.   


“미안하지만 그녀가 죽은 것은 확실해. 지금 옆방에 있단 말이야.”


“뭐라고?” 


“나도 오늘 아침에야 알았어. 옆방에 그녀의 시체가 있어.”


세상의 공기가 달라졌다. 이 새끼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하지? 난 정말…….”


“잠깐 멈춰. 뭐라고 그랬어? 우리? 이봐 명백히 해두라고 이건 너의 문제라고,

괜히 엉뚱한 사람까지 잡아 끌지 마 그리고 더 이상 전화도 하지 말라고.

나랑 상관없는 일이야”


“그렇지 않아.”


“친구라도 무덤까지 같이 갈 수는 없는 거야.”


소름이 끼쳤다. 그가 이를 드러내며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어진 그의 말에 난 말을 잃었다.


“이 여자와 너와 나, ‘우리’ 모두 아는 사이야.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고.”


“.........” 


“끝나고 우리 집으로 와 주길 바래.”


악몽이라고 생각했다.

.

.


불행히도 

그의 집엔 모든 것이 있었다. 여자의 시체와 그와 내가 죽은 여자가 함께 찍은 스티커 사진. 벽에 기대 잠든 것 같은 시체를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예쁘다. 그러나 모르는 여자다.

다시 다정한 포즈로 웃고 있는 사진 속의 그녀와 나를 봤다. 머리가 아파왔다.

"이젠 어쩌지?"

미안하지만 나에게 물어봐도 알 수가 없다. 흔한 경험이 아닌 것이다.

"지금 몇 시지?"

"7시 45분."

"일단 밥부터 먹을까?"

웃으라고 한 얘기였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그날 밤 그녀를 일단 묻기로 한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달리 도리가 없다. 냉장고에 넣어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비닐로 시체를 감싼 후 커다란 박스에 그녀를 담았다. 뒷좌석에 박스를 싣고 아무 것도 기억 못하는 나와 어떤 이유를 알지 못하는 살인자 친구는 말없이 밤길을 운전했다. 뭔가가 엄청 꼬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틀 만에 시체를 뒷좌석에 싣고 밤길을 달리게 될 줄은 꿈에도 꾸지 못했다.


“전혀 기억나지 않아?”


대답대신 난 창문을 열고 담배를 폈다. 한마디만 더하면 침이라도 뱉을 작정이다.


“이것으로 우린 공평해진 거야. 어차피 피차 얼마큼 이 여자와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는 없으니까.”


난 말 없이 차를 갓길에 세웠다. 별이 높고 밝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 이런 일이 벌어져도

되는 건가?


“사실 난 박스에 들어가 있는 여자를 알아.”


“큭큭 그럴 줄 알았어. 왜 하필 너인가 했지.”


“사실 내 여자 친구였어. 착하고 예쁜 여자였지. 다리도 길고 몸매도 좋고…….머리에 든 것도 많아 얘기 나누는 것도 재밌었어. 평일엔 학원에서 고교생을 상대로 영어를 가르치고 주말엔 교회에서 봉사를 했지. 넌 틀림없이 주말엔 이 여자를 만나지 못했을 거야? 아무리 뒤를 밟아도.”


“그럼 네 여자 친구가 왜 내 옆방에 시체로 변신해있는지 설명해 보실까?”


“미친놈을 만난거지, 도서관에서 책을 보던 그녀는 제 정신이 아닌 스토커에게 걸린 거야. 그 정신이상자는 매일 그녀의 뒤를 밟고 만나자고 협박하고 괴롭혔어. 어쩔 수 없이 신변의 위협을 느껴 거짓 번호도 알려주고 영화도 한번 봐주고 했지만 결국 그녀는 변태 정신 이상자를 무시하기로 결정 한 거야. 그것이 그녀의 유일한 잘못 이었어 그런 놈은 당장 경찰에 신고해 콩밥을 먹게 했어야 했는데 말이야.”


“계속 지껄여봐.”


“결국 집에 돌아가던 그녀를 너는 납치했지. 그리고 그렇고 그런 놈들이 그렇듯이 지저분한 짓을 하려 한 거야. 그녀는 반항하고 '너는 변태다. 쓰레기에 인간 말종이고 구제 불능의 더러운 녀석이다.' 당연한 소리를 질렀을 거야. 어쩌면 너는 네가 그녀를 정말 사랑하고 있었다고 믿고 있었을 지도 몰라. 뭐 그런 자식들이야 생각하는 게 다 그 모양이지,

그렇게 무심코 조른 그녀의 목에서 손을 때기 전 까진.”


“그 다음엔 시체를 업고 집에 돌아와 옆방에 유기한 다음에 전혀 모르는 여자처럼 너에게

전화한 거지. ‘어떤 여자를 죽였어’ 라고.”


“잘 아네.”


“그럼 이것은 어떨까? 도서관에서 처음 본 그녀에게 반해 구애를 했지만 그녀에겐 이미 남자 친구가 있었어. 치졸하고 비겁한 쓰레기 같은 녀석이. 하지만 그녀의 남자 친구는 또한 나의 친구이기도 했어. 우리 셋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지. 난 그걸로 충분히 만족한 거야. 하지만 어느 순간 보고 말았어. 내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친구가 그녀를 의심하며 때리다 결국 실수로 그녀를 죽이는 장면을…….놀라 나 역시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지. 너는 고민했어. 나를 어떻게 처리할까. 너는 내가 기면 상태에서 순간 기억상실증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나를 침대에 눕히고 그녀를 옆방에 기대놓은 후 자리를 정리하고 몰래 빠져 나온 거야. 어때 그럴듯하지 않아?”


“재밌는 이야기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냐.”


“너도 결코 네 말이 진실이라고는 할 수 없을 거야.”


“아니, 나는 진실을 알고 있어. 이젠 긴 꿈에서 깨어나야 하는 순간이야. 지금 몇 시지?”

나는 어찌해야할 바를 몰랐다.


친구는 벌써 내 목을 졸라 오고 있었다.

.

.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시계를 보았다. 아침 7시 45분. 기분 좋은 날이다. 나는 기지개를 펴며 옆에 곤히 잠든 여자 친구를 껴안는다. 가슴 아픈 일이긴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엔 그녀는 숨 쉬며 살아 있는 것이다. 살 냄새를 맡는다. 영원히 깨고 싶지 않다.


“어머 짓궂기는…….”


싫지 않은 듯이 나를 살짝 밀쳐내며 그녀는 몸을 반쯤 일으킨다. 희망 없는 눈물이 고였다. 허망한 생각을 지우려 다시 한 번 그녀를 껴안는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오늘 따라. 이상하네. 자기 오늘 무슨 일 있어?”


“늘 보고 있어도 사랑해. 숨을 쉴 때도 꿈을 꿀 때도 보고 싶어.”


얼굴이 발개지며 행복한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가득 찬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전해지지 않는 편지처럼 허공에서 사라지는 메아리처럼  느낌 없는 마음에 아픔을 느끼려 난 입술을 깨물고 그녀의 얼굴로 나의 얼굴을 가져갔다.


.

.

처음처럼 살인자 친구와 나는 다시 커피숍에서 만났다.


내 얘기를 묵묵히 듣던 그는 오랜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어디서부터 알았지?”


“너의 집에 가서 시체를 확인했을 때부터. 우선 내가 내 여자 친구의 얼굴도 기억 못한다는 것이 의심스러웠어. 그리고 벽시계를 보니 7시 45분이었어. 전날 너와 얘기를 할 때 너는 망가진 시계를 차고 있었어. 7시 45분에 고정돼 있었지. 정지된 7시 45분의 세계였던 거야. 그때 알았어. 이것이 너의 악몽이었다는 것을.”


“나도 의심스러운 것이 많았지만 믿을 수 없었어.”


“그랬을 거야. 하지만 결국 내가 아무렇게나 지껄인 내용이 모두 사실 이었던 거야. 웃긴 얘기지만 너와 나는 너의 의식의 일부분일 뿐이지. 넌 기억을 가지고 있고 나는 이유를 가지고 있어.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이제 꿈에서 깨면 네가 할 일은 너무 명확해. 더 이상 너를 괴롭혀 의식을 분열 시키지 마.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그녀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얼굴을 쓸어 올리며 그가 티스푼을 들고 커피를 휘 젓는다. 연민이 들었다.

정확히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었다.


“그녀를 정말 사랑했어.”


“알고 있어. 나도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거든. 하지만 이게 진실이야.”


그는 티스푼을 손가락에 힘을 줘 구부렸다. 휘어지지 않고 있던 그것은 순간 믿을 수 없을 만큼 활모양으로 크게 튕겼고 이윽고 티스푼은 반 토막이나 떨어져 나갔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세상이 조용했다. 그리고 뭔가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그가 웃는다.


“그렇지 않아.”


아무래도 그가 비현실이고 내가 현실인 것 같았다.


“이젠 긴 꿈에서 깨어나야 하는 순간이야. 지금 몇 시지?”


악몽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말은 두려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소름이 끼쳤다.

"어디서부터 알았지?"

!!!!!!!!!!!!!!!!!!!


입을 열고

나는 서둘러 귀를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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